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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엇이 좋은 컨텐츠일까 (1)
    생각/덩어리 2023. 9. 1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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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서비스는 싱가폴에 본사를 두고 있어 거진 영어로 이루어져있다.
     
    이에 따라 약 3년간의 기술(번역) 부채가 쌓여와서 작업해야할 부분이 많다.
     
    때문에 얼마 전부터 기능 개발 파트를 잠깐 내려놓고 자사 앱 한글화를 진행하고 있다.
     
    일부 한글화가 여러 사람에 의해 분할되어 진행되어 있지만
     
    그 특성상, 용어가 통일되어있지 않다거나, (코인 / 동전 / 금액 / 현금 ..)
     
    말투가 변화무쌍하다거나, (입력하시오 / 입력하세요 / 입력 / 입력합니다 ..)
     
    문장이 중의적이거나 해서 유저로 하여금 오해를 살 수 있다거나,
     
    단순 오역이거나,
     
    텍스트 베이스로만 작업하여 실제 앱 사용시 본의와 동떨어져있다거나..

    지나치게 번역체로 쓰여졌다거나.. (귀하는.. or 그 / 그녀는 ..)
     
    지나치게 포멀한 말투로 쓰여 우리 앱 분위기와 전혀 맞지 않다던가.. (그래픽은 아기자기한데 말투는 겁나 딱딱한)
     
    기타 수많은 이유로 수정하고픈 부분이 아주 많았다.
     
    이러한 요소들을 모두 고려하면서 작업을 하다 보니..
     
    내가 꽤나 번역 작업하는것을 즐거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원래의 의미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고 약간의 농담도 섞어가며,
     
    내 맘대로 (한국인이 거의 없어서 태클 걸 사람도 없다), 번역 작업을 하다보니 나름 재밌다.
     
    원문의 의미를 그대로 전달하기보다는,
     
    원문으로 하여금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그대로 계승한다는 전제 하에
     
    자유로이 말투나 여러 요소들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단순히 기존 문장들을 새롭게 대체하는 것만으로도
     
    컨텐츠의 분위기나 성질 등을 완전히 뒤바꿔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를 들자면.. 음
     
    강아지/고양이 둘 중 하나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강아지/고양이 버튼 중 해당되는 하나를 선택하게 만들어 그 결과를 DB에 누적시키는 서비스가 있다고 하자.
     
    유저가 달성해야 하는 목표를 제시하고, 이후엔 선택을 하는 창이 뜨는 것이다.
     
    기존에는 이렇게 설명할 것이다.
     
    컨텐츠 V.1
    --------------
    설명 : '당신은 강아지와 고양이 둘 중 이미지와 부합하는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다음을 눌러 진행하십시오'

    [강아지 이미지]
     
    [강아지 버튼]  [고양이 버튼]
    --------------
     
    .. 재미없다.
     
    나는 이렇게 바꿀 수 있다.
     
    컨텐츠 V.2
    ---------------
    설명 : 당신은 고양이시러시러 왕국의 성문지기입니다.
     
    이 왕국의 모두는 고양이를 극도로 혐오하며, 고양이가 성으로 들어갔다간 큰 혼란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앞으로 여러 동물들을 마주하게 될 것인데, 고양이를 보게 된다면 절대 성문으로 들여보내면 안됩니다.
     
    고양이를 제외한 다른 동물이 성으로 들어가길 원한다면, 절대 거절해서는 안됩니다.
     
    [강아지 이미지]
     
    [들여보낸다] [들여보내지 않는다]
    ----------------
     
    단순히 각 요소의 의미를 살짝 바꾸었고, 최종 누적 데이터는 기존과 같을 것인데 컨텐츠의 느낌이 확 달라졌다.
     
    컨텐츠 V.1과 V.2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한다면 컨텐츠의 생산자가 소비자의 행동을 유도하는 데 있어
     
    그 행동을 직접적으로 유도하느냐, 간접적으로 유도하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한다.
     
    V.1의 경우.. 유저의 입장에서 컨텐츠를 소비하는데 무언가 나에게 강요를 하는 느낌이 든다면 자연히 거부감이 느껴지고 어렵게 느껴진다. 이것은 내가 자유로이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닌 의무, 일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개발자의 목적인 적절한 데이터 쌓기를 직접적으로 요구하면 이런 일이 생긴다.
     
    V.2의 경우 개발자의 본의(데이터 쌓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유저가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만든다.
     
    어떤 컨텐츠든 소비자가 그것을 소비하고 싶도록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 컨텐츠의 개발자는 우리의 의도를 전면에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 좋을 수 있다는 것이다.
     
     
     
     
    추신) 이러한 생각들의 배경에는 내가 예전에 게임이나 영화 등으로부터 제작자가 컨텐츠를 제작하는 방식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예로 영화의 경우 제작자는 이야기 전개를 위해 각 인물의 특징이나 시대배경 등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길 원할 것이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 나레이터를 넣어 직접적으로 전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이는 소비자로 하여금 피로를 유발할 수 있으며, 그보다는 각 요소를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을 삽입해 소비자들이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자연스레 습득할 수 있도록 하는 데서 영감을 얻었다.
     
    게임의 경우 일반적으로는 무수한 안내 메시지 등을 통해 상호작용 요소들을 알려주거나 특정 장소까지 가는 방법을 바닥의 화살표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방식이 많다. 적어도 나는 보통 이런 게임을 오래 하지 못한다. 지식에 대한, 그리고 행동에 대한 강요를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감명을 받은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이라는 게임의 경우, 제작자는 게임 시작 부분에서 화면이나 지형, 카메라 구도, 물체 배치 등을 통해 게이머가 자연스레 모든 것을 익힐 수 있고 목표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게임 젤다의 전설. 내 최애 게임 중 하나


    추추신) 더불어 지루한 작업들을 흥미롭게 만드는 Gamification 작업에 흥미가 생겼다.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고, 빠져들게 만들 수 있는 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에 대해 생각 및 정리해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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