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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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이놈아저씨가 되는 길삶/일상 2022. 12. 26. 20:05
20대 초반, 아르바이트를 할 때의 일이다. 당시 프론트에서 고객을 맞이하는 업무를 했었기에 꽤나 다양한 상황을 마주했었다. 평소 어떤 사람이 와도 긴장하거나 당황하는 일이 거의 없는 나인데, 나를 가장 당황시킨건 의외로 평범한 어느 젊은 엄마와 어린아이였다. 손님이 많아 둘은 줄을 서야만 했는데, 대기하는 동안 아이는 뭔가 불만이 있는지 제 엄마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칭얼댔다. 엄마는 그런 아이에 대해 이골이 났는지 피곤한듯 적당히 달래주며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내 앞에 그 둘이 왔을 때, 엄마는 결단이 난 듯 엄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일렀다. ‘자꾸 그러면 이놈아저씨가 뭐라한다!’ 이 말에 재밌네, 생각하고 적당한 향수를 찾아 빠지려는 찰나 고개를 들어보니, 그 엄마의 진지한 눈은 나를 향해 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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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찰리 브라운삶/일상 2022. 9. 10. 01:23
1.모종의 이유로 인해 추석기간동안 본가에 가지 않게 되었다.그리하여 시간이 난 김에 '에스피오나지'라는,이전부터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해보고 싶었던 곳에 가기로 했다.네이버 지도로 약 50분 거리, 오후 6시까지, 영업 중. 완벽하다.점심식사 후 옷을 차려입고 기분 좋게 집을 나섰다.그런데 왠걸, 겨우겨우 도착해보니 추석 연휴 휴무라는 것이 아닌가.다소 힘빠지는 결과를 마주한 나는 일단 카페에서 좀 쉬기로 했다.카페에 도착해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잠깐 공부한 후 넷플릭스로 안착.우연히 눈에 띈 찰리브라운 영화,무려 1977년작이다.찰리브라운과 스누피의 캐릭터는 알고 있었지만,제대로 애니메이션을 본 적은 없었던 나는 궁금증을 해소해보기로 했다.이 선택이 이런 놀라운 결과를 불러올 줄이야! 2.내용은 여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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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깃하게 다정한삶/일상 2022. 9. 5. 23:56
햇빛이 강하던 날, 이태원으로 향하는 버스 안이었다. 40대 초반에서 중반 정도 되어보이는 부부,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 그보다 서너 터울 아래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나와 같은 버스에 올랐다. 좌석이 부족해 큰 아이는 혼자 내 두 칸 앞에 앉았고, 엄마와 막내아이는 내 앞에 나란히 함께 앉았으며, 아빠는 내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처음에는 내 할일에 바빠 신경쓰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아빠가 아이들의 이름을 상냥하게 부르며 눈을 맞추고, 기분을 묻는 소리에 눈과 귀를 몰래 열었다. 아빠는 특별히 미남이라고는 할 수 없을 평범한 아저씨의 얼굴이었지만, 그 한껏 다정하게 누구누구야,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내가 다 설렐 지경이었다. 그런 다정한 아빠와의 조화가 좋아보이는, 안정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