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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연'의 찰리 브라운
    일기/일상 2022. 9. 10.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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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종의 이유로 인해 추석기간동안 본가에 가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시간이 난 김에 '에스피오나지'라는,

     

    이전부터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해보고 싶었던 곳에 가기로 했다.

     

    네이버 지도로 약 50분 거리, 오후 6시까지, 영업 중. 완벽하다.

     

    점심식사 후 옷을 차려입고 기분 좋게 집을 나섰다.

     

    그런데 왠걸, 겨우겨우 도착해보니 추석 연휴 휴무라는 것이 아닌가.

     

    다소 힘빠지는 결과를 마주한 나는 일단 카페에서 좀 쉬기로 했다.

     

    카페에 도착해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잠깐 공부한 후 넷플릭스로 안착.

     

    우연히 눈에 띈 찰리브라운 영화,

     

    무려 1977년작이다.

     

    찰리브라운과 스누피의 캐릭터는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애니메이션을 본 적은 없었던 나는 궁금증을 해소해보기로 했다.

     

    이 선택이 이런 놀라운 결과를 불러올 줄이야!

     

     

    2.

     

    내용은 여름 캠프를 떠난 찰리 브라운과 친구들이 보트 경주에 참가한다는 것이다.

     

    자세한 설명은 차치하고,

     

    찰리 브라운에서는 메인 스토리와는 관련이 없는,

     

    짧은 시간을 차지하는 소위 '쓸데없는' 장면들이 다수 등장한다.

     

    (스누피의 오토바이가 고장나 즉석에서 고치고는 다시 길을 떠난다던지..

     

    샐리 브라운이 우연히 마주친 아이와 신경전을 벌인다던지)

     

    나에게는 이런 장면들이 곧,

     

    길을 가던 호기심 많은 아이가 주변의 무언가들에 시선을 빼앗겨

     

    10분길을 한시간 걸려 가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모든 장면장면마다 나름의 목적을 부여한 장면만을 넣는 현대 영화나 드라마의 그것과는 대조된다고 느껴졌다.

     

    이것은 결과보다 과정 하나하나에서 의미와 즐거움을 찾는 나에게 신선한 재미를 선사했다.

     

    치밀하게 짜여진 메인 스토리의 결말을 향해 숨쉴 틈 없이 전개해가는 것도 좋지만,

     

    혹자는 답답해할 이런 '쓸데없는' 사건들로 인해 각 인물의 깊이감이 더해져 다각화되는 느낌이었고,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와 같은 행복감을 선사했다.

     

    심지어는 이런 생각을 하던 와중,

     

    찰리브라운의 친구인 라이너스가 말한다.

     

    '걱정 마 찰리 브라운, 이기고 지는 게 아니라, 어떻게 경기하는지가 중요해.'

     

    이쯤되면 결과보다는 그 과정들이 중요하다는 것은,

     

    작품을 관통하는 철학 그 자체임이 확실해졌다.

     

    스누피 너무 귀엽다..

     

    3.

     

    그렇게 재미있게 작품을 보던 와중,

     

    갑자기 각 캐릭터의 행동과 감정들을 어떻게 표현하였는지 자세히 관찰하게 되었다.

     

    그러다 또 한번 갑자기, 캐릭터들을 따라 그려보고 싶어졌다.

     

    마침 내게는 넷플릭스 머신으로서만 그 기능을 수행중인 아이패드가 있었고

     

    마침내 나는 이를 제대로 활용해볼 수 있게 되었다.

     

    처음 그려본 것 치고는 꽤나 만족할 정도의 작품이 나왔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그림에 관한 내용은 다른 글에서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그리하여 오늘부로 내 인생의 카테고리 중 하나에 '그림'이 들어가게 되었다.

     

     

    4.

     

    메인 스토리를 잊고 벌어지는 우연한 사건들은 작품을 풍부하게 만든다.

     

    본 목적을 잊고 길을 새는 호기심 많은 아이는 우연을 통해 새롭게 사고하고 성장한다.

     

    나 또한, 옷 쇼핑이라는 오늘의 본 목적을 놓친 후 마주한 우연을 통해 그림이라는 새로운 성장을 하게 되었다.

     

    각 우연들이 항상 좋은 우연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 우연으로부터 어떤 '발견'으로 이끌어낼지는 본인의 몫일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통해 나는 찰리 브라운의 팬이 되었다.

     

    그리하여 본 글의 제목은, '우연의 찰리 브라운'이다.

     

     

     

     

     

     

     

    1) 작품에 어른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등장하더라도, 실루엣으로만 처리된다 (ex: 운전수).
    어른들이 감히 개입할 수 없는 아이들만의 동심에 집중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2) 찰리브라운과 친구들이 치는 사소한 장난들로부터, 묘한 행복감과 그 시절의 향수가 동시에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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